[요란했던 어촌뉴딜…새 건물만 빛나고 어촌은 그 자리❺] 주민이 주도한 창바우마을의 어촌뉴딜사업이 박수받는 이유
대한민국 어촌의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해수면어업 기준 어가인구는 2014년 14만1000명에서 2024년 8만4000명으로 감소했고, 고령화율은 같은 기간 32.17%에서 50.9%로 높아졌다. 하지만 귀농·귀촌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농촌과 달리, 귀어인구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21년 이후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2024년 귀어가구는 555가구로 전년(716가구) 대비 22.5% 감소했으며, 귀어인은 585명으로 전년(750명) 대비 22% 감소했다. 생활을 위한 인프라 등 정주여건이 농촌보다 낙후된 곳이 많은 것 역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에 정부는 어촌어항 기반 시설을 현대화하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 특화 개발을 위해 어촌뉴딜300, 어촌신활력증진 등 어촌어항 재생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된 어촌뉴딜300 사업에는 3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됐다. 5년 동안 한반도 연안을 들썩이게 한 이 사업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거제신문은 거제시를 중심으로 국내외 어촌뉴딜300 사업 사례를 분석해 어촌 재생 사업의 문제점을 진단하려 한다. 이름만 바꾼 비슷한 국책 사업이 비슷한 이유로 실패를 거듭하지 않도록 선명한 이정표를 세우고자 한다. 실패와 성공이 갈리는 길목이 어디인지, 그곳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함이다. - 편집자 주
어촌뉴딜300 사업을 통해 푸른 바다와 맞닿은 캠핑장을 조성한 포항 창바우마을. 수도권에서도 일부러 찾는 오토캠핑 명소로 손꼽힌다. @정환정 기자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기분은 어디에서든 상쾌하기 마련이지만, 반듯한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동해안을 곁에 둘 때의 감상이 특히 각별하다.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탁 트인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덕분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동해에서는 바다를 이용한 체험활동이 쉽지 않았다. 금세 거칠어지는 깊은 바다는 안전에 위협이 되기 마련이다. 포항의 창바우마을은 이런 어려움을 어촌뉴딜300 사업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다.
동해에서 보기 드물게 낮은 수심의 체험 공간을 갖고 있던 덕분에 어촌체험마을로 선정될 수 있었다. @창바우마을 제공
#체험마을서 찾은 ‘고령화마을’ 돌파구
경주 감포읍과 이웃하고 있는 창바우마을의 정식 행정명은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2리다.
“원래 이름은 곳간 창·바위 암자를 쓰는 창암리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창바우가 더 발음하기 쉬우니 오래 전부터 그렇게 불러왔고요. 바위가 많은 곳이라는 뜻인데, 정말 바닷속에 암반이 넓게 퍼져 있어 그곳에서 오래 전부터 해녀들이 미역도 따고 미역을 보금자리로 삼은 해산물도 채취하곤 했죠. 덕분에 인근에서는 부촌으로 손꼽히는 동네였습니다.”
창바우마을의 김태섭 운영위원장은 “현재 60가구 9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며 마을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주민 중 어촌계원은 25명으로, 지금도 미역 채취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살림 넉넉하기로 소문났던 이곳 역시 다른 어촌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고령화로 인해 해녀는 물론 주민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태섭 운영위원장은 마을에 전환점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바다가 내주는 해산물은 여전히 풍부했다. 활동 중인 해녀들도 남아 있다. 예전처럼 무조건 많이 캐와 많이 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급화 전략을 추구한다면 사업성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뜻을 함께할 주민들과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해녀들이 속해 있는 어촌계는 주민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았다. 예전 방식대로 생활해도 크게 불편한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어촌계원들과 비어촌계 주민들이 협력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많은 어촌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과 그저 바다와 맞닿은 마을에서 생활하는 이들 사이에는 인식 차이가 발생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유수면인 바다를 어촌계가 마치 개인 혹은 집단의 소유인 것처럼 셍각하고 행동함으로써 갈등이 빚어진다. 바다를 이용한 마을 사업이 제대로 계획도 세우기 전에 좌초되는 상황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창바우마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동화된 예약시스템과 운영 노하우를 갖게 된 주민들은 창바우마을을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정환정 기자
#모일 수 있는 힘으로 만든 ‘어촌체험마을’
2011년, 당시 이장이었던 김태섭 운영위원장을 중심으로 어촌계에 속하지 않은 주민 60여명이 힘을 모아 창바우마을주민위원회를 조직했다.
고둥을 잡을 수 있는 얕은 바닷가를 활용해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받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동해에서는 어촌체험마을 선정 사례가 많지 않았다.
“어촌체험을 위해 가장 좋은 공간은 갯벌입니다. 활동이 비교적 안전하고 배를 타지 않고도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거나 채집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어촌체험마을들은 남해와 서해에 분포돼 있습니다. 거제도 그런 부분에서는 상당히 유리한 여건이죠. 반면 동해는 물이 얕거나 고인 지역이 거의 없는 데다 항시 파도가 강한 곳이다 보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나마 창바우마을에는 무릎까지만 바닷물이 차오르는 곳에서 갯고둥을 잡을 수 있어 어촌체험마을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중요한 건 환경 뿐은 아니었다. 다양한 행정적 준비도 필요했다. 김태섭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정보를 얻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경북도청까지 찾아다니길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 덕분에 2012년, 창바우마을은 포항시 최초의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됐다.
하지만 운영이 쉽지 않았다. 특산품인 미역을 가공해 마을 브랜드를 달아 판매하려 했지만 어촌계에서는 여전히 협조에 응하지 않았다. 그동안 하던 대로 각자 손질해 기존 거래처에 판매한다며 마을위원회로의 납품을 거부했다. 창바우마을주민위원회가 바다를 활용하는 데에도 여전히 인색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촌뉴딜300 사업 공고가 게시됐다.
창바우마을위원회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어항을 정비함으로써 더 넓은 체험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미역 가공공장을 설립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면 마을 브랜드를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선결 과제도 존재했다.
어촌뉴딜300 사업을 통해 수익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부담이 필수적이다. 창바우마을주민위원회는 어업회사법인을 설립해 출자금을 모았다. 1년 동안 3차례에 걸쳐 약 6억원의 출자금을 모아 건물을 신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원하던 규모와 모습이 아니다.
부지 매입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부득이 설계를 변경해 2층 건물로 방향을 전환했다. 1층에는 계획보다 작아진 미역 가공공장과 무인판매점을, 2층에는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를 조성했다.
그리고 카페에는 전문 운영 인력을 고용했다. 덕분에 운영은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어느 곳보다 전망이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을 뿐 아니라, 마을기업이 운영하고 있다는 데에 호감을 갖고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체험 프로그램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학교 혹은 학년 단위로 이루어지던 체험을 학급 혹은 가족 단위로 진행하고 있다. 여행 패턴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창바우마을에서도 이런 상황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프로그램 운영에 유연성을 더하고 있었다.
어촌뉴딜300 사업을 통해 조성한 오토캠핑장 역시 대구경북 지역은 물론 수도권에서부터 찾고 있는 ‘캠핑 성지’로 손꼽히고 있다. 개장 초기엔 고객 응대에 서툰 주민들과 캠핑객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지만, 자동 예약 시스템 도입과 접객 교육 등을 통해 이제는 예약 가능일이 도래할 때마다 순식간에 마감이 된다는 게 김태섭 운영위원장의 설명이었다.
이렇게 선도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창바우마을이 속한 포항시는 현재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 전담 부서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로부터 어촌신활력증진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본지 정환정 기자.
#성공 위한 전제 조건, 주민 협의
현재 포항시는 4개 마을에서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어촌신활력사업은 ①어촌 경제플랫폼 조성 ②어촌 생활플랫폼 조성 ③어촌 안전 인프라 개선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유형 ①은 이미 어업기반이 갖춰진 어촌에 재정지원 사업을 마중물로 민간 투자 사업을 활성화하여 인구 유입 및 지역경제 활력 제고를 목적으로 하며 ②는 생활 서비스 기반 구축을 통한 귀어인 유치 활성화로 유입인구 정착, 생활 사회간접자본 시설 확충을 통한 편의시설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③은 소규모 어항 및 배후 어촌마을의 재해 예방을 위한 어항시설 확충 등 생활 안전시설 개선을 위해 시행된다.
어촌뉴딜300 사업과 달리 그 목적을 세분화하는 한편 유형별 재정지원은 각각 300억원·100억원·50억원으로 상한을 설정했다. 그리고 현재 포항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4개 마을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은 모두 유형②유형에 해당된다.
유형②는 민간 앵커 조직이 마을에 상주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해 하나의 완성된 사업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그동안 소수 인원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해 어촌뉴딜300 사업이 갈 길을 잃은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에 따른 변화다.
이같은 변화로 사업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쉽지 않아졌다는 게 포항시청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그는 “②의 경우 바텀업(Bottom Up) 사업방식이기 때문에 주민 모두가 사업계획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에 대해 합의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며 “작은 마을, 적은 수의 주민들이라도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지자체와 중앙정부를 납득시킬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에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의 현황을 전했다.
국가 예산을 들여 새로운 건축물 등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지역 안에서의 충분한 숙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동안 지자체장의 지시 등으로 많은 곳에서 진행됐던 탑다운(Top Down) 방식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역민들이 필요성을 인지하고,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결과물을 만들고 있는 창바우마을. 어촌계 혹은 지역 내 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소수에 의해 계획이 좌우되며 결국 실패 사업지로 분류되는 곳들에 비추어 보면, 이들이 얼마나 단단히 합심해 공동의 이익을 창조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촌뉴딜300 사업의 후속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을 준비 중인 거제 내의 마을들도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